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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 : 그 때는 기억나요. 축제에서 우승하고 난 뒤 아가씨께 들어오는 선물의 수가 확 늘었죠.
실프 : 그래, 그 즈음에 아버지의 통보를 받았지. 내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어 버린 건 아마 그 때였지 싶어.
"아가씨, 이것들 좀 보세요! 오늘도 선물이 잔뜩 왔다구요. 세상에... 이게 다 얼마짜리야?"
나는 아침 댓바람부터 호들갑을 떨면서 집안을 휘젓는 우즈의 경탄에 잠을 깨고 말았다.
"우즈... 꼭두새벽부터 대체 무슨 일이야?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잖아..."
"꼭두새벽이라뇨. 벌써 8시라고요. 그것보다 아가씨, 이리 좀 와 보세요."
나의 불평을 한 마디로 일축한 우즈는 내 손가락을 잡고 어딘가로 이끌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잠시 시간을 두고 구경하고 있자니 날 잡아당기는 우즈의 얼굴이 빨개지고 이마에는 구슬땀이 흐른다.
하기사, 0.5kg밖에 되지 않는 저 작은 몸뚱이로는 마법이라도 부리지 않는 한 성인에 가까운 인간을 끌어당길 수 있을 리가 없지. 불쌍한데 그만 봐줄까.
우즈가 측은해진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우즈가 이끄는 쪽으로 따라갔다.
"이게 다 뭐야?"
테이블 한 켠을 차지한 선물 더미를 주시하던 내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다소 생뚱맞은 것이었다.
"뭐긴 뭐예요. 다 아가씨께 온 선물이죠!"
"난 그걸 물어본 게 아냐. 왜 이런 게 여기 있느냐는 거라고."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거예요? 4년 연속 벚꽃 축제에서 우승한 아가씨를 연모하는 신사 분들이 보낸 거잖아요. 그것보다 이것 좀 보세요. 여기 장미 꽃다발도 있고, 아가씨께 잘 어울리는 루비 팔찌, 그리고 이건 요정의 반지에 신성한 조각상... 우와, 경국의 로브잖아? 인간들은 진짜 구하기 힘든 건데!"
"됐으니까 그만 감탄해, 우즈. 입에 파리 들어가겠다."
빈정거리는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우즈는 혜안 마법을 써서 잔뜩 포장된 선물의 내용물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나는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이 광경을 반쯤 질린 눈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아가씨, 진짜 굉장하지 않아요?"
"어떤 거? 진귀한 선물들? 아님 매년 이것들을 끌어오는 나?"
나는 우즈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고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아침 식사 전 식욕을 돋우는 한 잔의 우유. 입술에 달라붙는 우유의 고소한 맛을 음미하며 살짝 눈을 감고 아침의 여유를 만끽하는 나.
"둘 다요! 매년 축제에 나가서 1등을 하시는 아가씨도 대단하고(나라에서 인정한 미스 왕국이라는 거니까), 이렇게 매년 선물을 보내오는 사람들도 대단하죠. 그런데 아가씨는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세요?"
"나는 매번 호들갑을 떠는 네가 더 신기한 걸.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는데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가 되지 않았어?"
내가 말했다.
뭐... 살짝 고백하자면 벚꽃 축제에서 처음 우승한 뒤 선물 공세를 받았을 땐 기쁘기도 하고 내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오르기도 하고 성의를 보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한 명 한 명에게 감사 편지를 쓸 만큼 들떴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도 매년 반복되다 보니 어느 새 나는 이 상황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되더라도 단기간 내에 적응할 수 있다고 했던가?
"하지만 아가씨. 이번에는 다르다구요."
"뭐가 다른데?"
나는 마지막 남은 우유 한 모금을 머금으며 일단 물어는 보았고-
"이 선물들, '어떤 한 사람'이 가져온 것 같았어요."
푸우우우웁.
우즈가 중얼거린 말에 무심코 내가 뿜어낸 우유는 테이블조차도 뛰어넘었다.
"그게 무슨... 아니, 그게 정말이야?"
뿜어낸 우유부터 닦아야 할 지, 놀란 가슴부터 진정시켜야 할 지, 우즈의 말이 사실인지부터 확인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나.
우즈는 손가락을 튕겨 행주를 소환해 내가 더럽힌 부분이 깨끗이 닦이도록 마법을 부린 뒤 선물들 사이에 끼어 있던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
카드를 받아 열어보았지만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나에 대한 칭찬 일색의 평범한 카드.
"생각해 보세요 아가씨. 선물은 이만큼이나 있는데 카드는 1장밖에 없다고요. 거기다..."
갑자기 우즈는 근처에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까 선물을 실은 마차가 집에 들어오는 걸 봤는데... 글쎄 마차가 한 대밖에 오지 않았어요. 여러 명이 보냈다면 마차든 심부름꾼이든 여럿이 왔어야 하는 거 아녜요?"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말끝을 흐렸다.
테이블 한 켠에 쌓인 선물들은 산더미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물량이었다.
아까 우즈가 밝힌 내용물로만 보더라도 저것들을 마련하는데 있어 상당한 돈이 투자되었을 터. 근데 그걸 모두 한 사람이 마련한 것이라면...
부자라서 씀씀이가 다르다고 해야 할 지, 아니면 그냥 돈 낭비라고 해야 할 지...
"...우즈."
나는 휘황찬란한 포장지에서 마침내 눈을 뗐다. 내 말투가 변한 것을 알아차렸는지 테이블 주변을 날아다니던 우즈가 얼굴의 미소를 지우고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이것들, 당장 원래 주인한테 돌아가도록 조치해 줘."
"예? 하지만..."
"나 농담하는 거 아냐. 같은 말 두 번 하게 만들지 말고 어서. 지금 당장!"
우물거리는 우즈를 재촉하듯 나의 말투가 약간 거칠어졌다.
보낸 성의가 있다고 한다면 듣기에는 좋지만 거기에도 정도가 있는 법.
거의 10000골드에 육박하는 비싼 물건들을, 그것도 한 사람이 보낸 것이라면 염치없이 덥석 받아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우즈는 불만인 것 같지만.
입을 삐죽이면서도 내 명령을 거스를 배짱은 없었던 모양인지 웅얼웅얼 알겠다고 중얼거리며 문 밖으로 날아올랐고-
때마침 안으로 들어오는 아버지와 정면으로 부딪히고 말았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버지."
세계 부딪혔는지 반쯤 정신이 나간 듯 축 늘어지는 우즈를 안아 올린 나는 고급스런 예복으로 전신을 감싼 아버지께 아침 인사를 올렸다.
"그래, 너도 잘 잤느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아버지의 시선이 테이블에 한 동안 머물렀다. 아니, 테이블이 아니라 호사스런 선물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 온 것 같은데 우즈 말로는 모두 한 사람이 보낸 것 같다고 하지 뭐예요. 성의로 받기에는 너무 과분한 것 같아서 돌려주라고 말한 참이었어요."
아버지의 시선으로부터 무언의 압박을 느낀 나는 주섬주섬 아까 겪었던 자그마한 해프닝에 대해 낱낱이 말씀드렸다. 내 이야기를 듣고 카드를 들어 확인(아마 보낸 사람 이름을 알아두려는 것이겠지)하신 아버지께서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여셨다.
"그럴 필요 없다."
"네?"
순간, 내가 말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돌려줄 필요 없다고 했다. 우린 이걸 받을 자격이 있어."
"'우리'라니요? 아버지,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아버지의 탁한 회색빛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는 듯하다가 갑자기 매섭게 바뀌었다.
그리고.
약간의 사이를 두고 꺼낸 아버지의 다음 말에 나는 완벽하게 얼어붙고 말았다.
"지참금 말이다. 너의 혼수 지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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