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 아스팔.

프메5의 명실상부한 왕자로 프린세스 후보(혹은 그 비스무리한 것)을 찾아 여행 중.

외모도 준수하고 말도 잘 하는 편이며 무엇보다 왕자.

하지만 나는 이 녀석이 너무나도 싫다.

1. 연인과의 로맨스, 혹은 그 비스무리한 것도 없다.
게임 중에서도 엔딩에서도 이 녀석은 끝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를 하지 않는다.
아니, 정정하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직접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자는 산쥬로와 신야와 가토 뿐.
그 외의 남정네들은 사랑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많은 유저들의 마음을 자극할 대사와 상황을 연출해 주었다.
그들이 이벤트 CG에서 보여준 로맨스를 통해, 많은 유저들은 망상... 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 남캐를 좋아하게 만드는 발판이 되었다.
허나 아스팔을 봐라.
게임 내에서 이 녀석이 대체 뭘 했는지.
딸이 피터지게 싸우는 동안 자기는 안전하게 뒤에서 구경만 하다 비둘기와 함께 거적데기를 뒤집어 쓰고 딸에게 잠시 얼굴을 비춘 것과, 비둘기와 대화하고 마을 길과 그네와 자판기 사용법을 몰라 딸에게 물어본 게 전부이고 그 뒤에 갑작스럽게 프러포즈.
대체 여기서 어떻게 하면 로맨스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강제 데이트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마을 안내하고 나서 몇 달 뒤에 바로 프러포즈냔 말이다;;;
만남의 기간도 짧고 우정 이벤트 없이 몇 번 만나다 바로 프러포즈로 들어가야 하는 조건이 다른 남캐에 비해 불리하다는 것은 변명으로 삼을 수 없다.
로셰도 아스팔과 비슷한 조건이었지만 그는 4번이라는 짧은 만남 속에서 몇몇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로맨스를 연출해 주었기 때문이다. 비 오는 공원에서의 프러포즈. 참 낭만적이지 않은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와 조촐한 로맨스가 남자들에겐 별 것 아닐지 몰라도 여자들에게는 얼마나 크게 와닿는지를 그는 좀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2. 아스팔이 필요로 했던 건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는 영양보조제였다.
진프린세스와 프린세스 엔딩 내내 아스팔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건 함께 나라를 잘 이끌어가자는 말뿐이었다.
이 자식 화술도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은데 결혼식에서 아내한테 해 줄 말이 그것밖에 없냐.
아스팔과의 결혼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략결혼 냄새가 풀풀 풍겼다.
로맨스도 없고, 딸을 아껴주지도 않고, 뭣보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딸도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그 태도 때문에.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것도 아니고 사랑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딸을 키운 입장에서 본다면 자기가 고이 기른 딸을 나라를 안정시킬 영양보조제 쯤으로 취급하며 냅다 채가는 놈을 고운 시선으로 보기는 힘달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3.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너에게 거부권은 없다'
배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한없이 이기주의적인 발언. 상대의 거절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느낌이다.
이 대사에서 확실히 알게 됐다. 나는 아스팔을 싫어한다.
딸이 중학교 때부터 나오는 모 남자도 비슷한 말을 곧잘 하지만, 그는 자기 감정을 솔직히 내비칠 줄 몰라서 일부러 고압적인 말투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이의도 없으며 오히려 비슷한 대사가 나올 때마다 귀엽다고 생난리를 치지만
아스팔이 이 대사를 뱉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하나다. 가부장적 권위를 등에 업고 폭군으로 군림할 타입이라고. '내가 무조건 옳으니까 넌 무조건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는 느낌??
물론 옆에서 보면 한없이 불공평한 대우이지만 그것은 콩깍지의 영향으로 어찌할 수 없다.
같은 말을 해도 좋게 보이는 사람이 있고, 나쁘게 보이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4.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그 실상은 비겁한 겁쟁이.
'위험하면 구해줄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네'
얼핏 들으면 딸을 믿어준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믿어주기는 개뿔. 보스가 쓰러지고 그제서야 뒤에서 나오는 뻔뻔한 놈.
어이, 지금 장난하시는 건가?
자기가 한 거라고는 누군지 알아볼 수 없도록(하지만 다 알아봤지... 딸만 빼고--;) 거적데기를 뒤집어쓰고 뒤에 숨어있던 것밖에 없는 주제에.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 보스에게 져보기도 했지만, 이 자식은 끝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결국 집사가 딸을 데리고 도망치게 된다.
딸이 이기면 남의 심기를 긁는 말을 하면서 어슬렁어슬렁. 딸이 지면 줄행랑쳤는지 계속 숨어있었는지 끝까지 코빼기도 안 비치고. 너 대체 뭐하러 나온 거냐?
그는 겁쟁이가 틀림없다. 겁쟁이가 아니라면 싸울 능력이 되든 안 되든 나오는 것이 인지상정.
어쩌면 상황을 분석한 결과 자신이 나가도 이길 수 없을 거라 판단하고 무익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 나갔다는 설도 주장할 수 있지만, 이 설은 오히려 아스팔이 무능하다는 걸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애초에 그에게 싸울 능력이 있었으면 딸을 시키지 않고 자기가 싸웠을 거 아냐. 아님 딸과 같이 머리수로 밀어붙이든지.
아무래도 이 녀석은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는 보조제를 찾느라 훈련 따윈 하나도 안 한 것이 틀림없다!


5. 이건 이미 뻔뻔함의 수준을 한참 넘었다.
딸이 위험할 땐 구하지도 않고 잘 키워 놓으니 프린세스 후보라는 명목으로 냅다 채간다. 도둑놈 같으니라고.
딸이 위험해졌을 때 딸을 데리고 다른 세계로 도망쳐 온 것은 집사였고, 딸이 사는 세계에 찾아온 가토를 묵사발 낸 것은 전직 용사였고, 각 혁명세력의 부하와 보스를 무찌른 건 딸 자신이었다.
아셰트 가슴에 대못박아 딸이 스스로 아셰트를 처단하게 만들고, 운명의 날에 딸 채가는 거 빼고, 대체 아스팔이 한 게 뭐가 있는가?
세계의 조화와 안녕의 상징이라는 프린세스 자리를 맘대로 덜컥 맡겨 놓고, 혁명 세력을 피해 도망다닐 땐 도와주지도 않고, 자객이 공격하든 보스가 공격하든 아스팔은 절대로 노 터치.
권리는 주장할 줄 알면서, 의무는 이행할 줄 모르는 녀석이다.
남이 고이 길러준 딸을 채가면 자기도 최소한의 의무와 예의를 갖추는 것이 도리가 아니던가?
딸이 위험할 때는 구해준다거나, 아니면 쓸만한 정보를 찾아주던가, 하다못해 딸을 배려라도 해 주면 대체 어디가 덧나냐고요.
자기는 아무것도 해 준 것도 없으면서, 딸이 훌륭히 성장하니까 그제서야 '넌 나와 결혼할 사이야' 따위의 멋대가리 없는 프러포즈를 하면 세상에 어느 누가 좋아하냐고.


6. 외도하는 남자를 사랑해 줄 여자는 없다.
사실 외도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외도라는 단어는 약혼자나 배우자에게나 사용하는 단어이고, 외도라는 단어와 맞아떨어지는 사람은 딸보다 19살 연상인 모 예능사무소 매니저- 이지만, 대체할 만한 다른 좋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프린세스 후보들이 암살당하고 딸이 현실 세계로 도망쳐 오고 아스팔은 그 프린세스 후보를 찾아 딸이 사는 세계로 찾아왔다.
하지만 아스팔이 원했던 건 '프린세스 후보에 걸맞는 여성'이었지 '예전에 선택되었던 프린세스 후보'가 아니었다.
딸의 능력치가 낮을 경우 아셰트와 냉큼 약혼해서 남의 염장을 긁는 꼬락서니를 보여주는 것이 그 증거.
로맨스가 없는 것도, 사랑한다는 말 하나 해주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스팔은 모국의 안정을 제1순위로 치고 있었으니.
사실 아스팔의 행위가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결혼은 반드시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건 사실 다수의 망상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정략결혼이라는 형태로 애정이 없는 결혼도 얼마든지 있지 아니한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스팔을 나쁘게 보는 것은 내가 그 망상에 빠져 있는 다수의 한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망상에서 헤어나오고 싶지 않기에.
그래서 개인적으로 아셰트와 어깨동무를 하는 이벤트가 참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그렇게 안정시키고 싶어했던 나라를 자기 손으로 망치게 된다는 게 말이지.


7. 아스팔은 냉혹한 남자다.
먼저 냉정함과 냉혹함의 차이부터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냉정이란 행동이나 생각이 감정에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침착하고 차분한 것을 얘기하고
냉혹이란 행동이나 생각이 매우 차갑고 모질고 혹독한 것을 얘기한다. 조폭이나 사채업자, 일부 사람들의 대표적인 수식어.
게임 중이나 프린세스 엔딩에서는 알 수 없지만, 진프린세스 엔딩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아스팔의 일면.
퍼레이드 속에서 잠깐잠깐 슬픈 표정을 짓는 딸에게 아스팔은 말한다.
'...또 아셰트인가? 그녀는 프린세스가 되어 이 나라를 혼돈에 빠뜨리려는 속셈이었지. 그대가 신경쓸 필요는 없소.'
'민중 위에 서는 이에게 감성은 부수적인 것. 하지만 결코 그들에게 그것을 보여줘서는 안된다'
어이, 아스팔 씨.
중간에서 딸과 아셰트의 능력치를 재보면서 누가 더 나은지 고민하던 건 어디 사는 누구였지?
아셰트가 딸보다 낫다 싶으면 사이좋게 반지 끼고 어깨동무하며 남의 염장을 지르던 건 어디의 누구였어?
아스팔이 딸에게 프러포즈를 했을 때 기겁하던 아셰트와 그런 아셰트에게 일침을 가하던 아스팔의 행동으로 볼 때, 둘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진 몰라도, 적어도 그들은 '그냥 아는 사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둘 중에서 누가 더 수치가 높은지 잣대를 들이댔던 것을 보면, 아스팔은 아셰트에게도 그녀가 기대할 만한 대사나 행동을 보여주었다는 게 되는데, 최소한 그녀에게도 조금은 마음이 있었다는 게 되는데
'넌 내가 원하는 인재가 아니었거든? 이제 넌 필요 없어'라는 식의 말을 망설임없이 하는 걸 봐라.
아셰트의 사정을 알고 있던 딸이 아셰트에 대해 생각에 잠기자 '걘 악당이었으니까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라는 식으로 말하는 거 봐라.
'감정은 부수적인 것이고, 백성들에게 그걸 보여줘선 안된다'니... 민중 위에 선 자는 인간도 아니라 이거야? 항상 앞에선 생글생글 웃고 있으라는 거야 뭐야?
남을 배려해 준답시고 자기가 상처받으면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나는 아스팔이 1월 막바지에 아셰트에게 대하는 것을 보고 이 남자가 참 차갑고 인정머리없는 녀석이란 걸 느꼈고, 결혼식에서 딸에게 말하는 걸 듣고 애가 참 모질고 냉랭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아스팔의 말에도 일리는 있고, 어떤 의미로선 아스팔의 행동이 옳기도 하고, 감정에 이리저리 휩쓸리면 안 되는 건 아는데, 어차피 인간은 감정의 동물 아닌가? 웃고 화내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질투하고 증오할 줄 아는 건 인간 뿐 아니던가...?
조금만 더 남을 배려해 주고 조금만 더 자신에게 솔직해지면 안 되는 건가?


8. 성격이 참 비호감이다.
한번 미운 털이 박히면 고운 짓을 하든 미운 짓을 하든 밉게만 보인다는 속담이 있다. 굳이 얘기하자면 연쇄효과라 할 수 있다.
아스팔의 이런저런 부분들이 싫어지니, 예전엔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것도 한없이 밉게만 보이는 것.
아스팔이 가진 성격의 한 부분에 미운 털이 박혔기에 지금은 그의 성격 하나하나가 전~부 비호감이다.
억지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연쇄효과가 가져오는 파급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