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장에 있는 가게에서 폭발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소문이 종종 들린다.
처음에는 무슨 농담인가 싶었지만, 소문의 근원지가 내 딸과 친구가 함께 경영하는 가게의 이야기라면 마냥 웃을 수만도 없다.
한 번 상태를 보러 가 보는 게 좋으려나?
하지만 딸은 이미 홀로 독립한 한 명의 어른. 아이마냥 괜히 간섭하면 딸도 그리 기분 좋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상태를 보는 것 정도라면...

 

 


새로운 조합으로 만든 마법 약의 효능을 시험하기 위해 잔뜩 사들인 재료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머, 리제. 안녕!"

"오랜만이야, 넬리."

익숙한 얼굴은 다름 아닌 리제 톨버즈.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소중한 친우 중 1명이다.

"요새 어떻게 지내? 기사단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아직 여자 사병이란 건 그리 보편적이지 않으니까 잔뜩 고생하고 있는 거 아니니?"

"하하, 뭐 그렇지. 여자라고 무시하는 것들도 있고. 뭐, 그 녀석들은 실력으로 제압해 주고 있으니까 상관없지만 말야. 어머님은 아직도 탐탁지 않아 하시는 것 같지만 뭐 어쩌겠어. 무술대회에서 우승하는 조건으로 허락해 주셨으니까 맘에 들지 않으셔도 어쩔 수 없지... 그러고 보니 너는? 듣자하니 시장 안쪽에 가게를 차렸단 것 같은데. 지금 장 봐오는 길이야?"

리제의 시선은 자연스레 내가 양손 가득 안아 올린 종이봉투로 향했다. 나는 양 팔을 가볍게 흔들어 다시 봉투를 끌어안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의미에선 맞는 말이야... 내용물은 식료품이 아니라 새로 만들려는 마법 약의 재료지만. 지금 가게로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괜찮으면 같이 가서 차라도 한 잔 할래?"

"그래도 괜찮겠어? 동업자랑 공동 경영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긴 하지만 그 애는 뭔가 한 가지에 열중하면 다른 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딱히 친구 데려오는 걸 뭐라 하지도 않으니까..."

-얼마 전에 마리가 놀러왔다가 둘이 마법 얘기로 의기투합한 적도 있었고...
콰앙!!
그러니 괜찮을 거라고 리제를 안심시키려던 나의 뒷말을 자르는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중심부를 기반으로 피어오르는 자욱한 연기는 덤이냐?!

"설마...

"...아무래도 선약이 생겨 버린 것 같은데. 안 그래? 넬리."

폭발의 원인을 짐작한 나는 미간을 찌푸렸고(양손을 속박하는 짐꾸러미가 없었다면 아마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아 버렸겠지), 리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으응... 모처럼 만나서 초대할까 했는데. 미안해 리제. 아무래도 나 먼저 가 봐야겠어."

리제를 향해 살짝 곤란한 미소를 지어 보인 나는 기껏 마련한 재료가 땅에 떨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원인 발생지 - 나와 카렌이 공동 운영하는 가게로 뛰어들었다.
도대체 이게 몇 번째냐느니, 불안해서 어디 장사하겠냐느니 투덜거리는 옆집 상인들의 시선이 무지무지 따갑다...

"카렌, 또 저지른 거야?"

사 온 재료들을 내팽개치듯 내려놓고 반쯤 체념한 목소리로 묻자, 새카만 먼지를 뒤집어 쓴 작은 인영이 내게로 다가왔다.

"콜록콜록... 넬리, 어서 와..."

폭발에 휘말린 탓인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댕으로 장식한 데다 옷까지 그슬린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화낼 마음이 사라져 버린다.

"정말이지... 완전 검둥이가 됐잖아. 닦아줄 테니까 이쪽 좀 봐봐."

"미안..."

"움직이지 말고. 폭발할 위험이 있는 약 조합은 가게서 하지 않는다고 전에 약속했었잖아?"

"응."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똑같은 짓을 하면 어떡하니? 한도라는 걸 모르는 거야?"

"몰라."

-아차! 잘라 말했다!
순간 깜박하고 있었다... 일반인을 상대하는 방식으로 카렌을 대해 봤자 울화통이 터졌으면 터졌지 전혀 실익이 없다는 걸.

"아, 아무튼..."

나는 검댕을 문지르는 손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니까, 앞으로는 절대 이런 짓 하지 마. 알겠지?"

"...응, 알았어."

"정말? 정말 알아들은 거야? 반성하고 있는 거지?"

"응. 앞으로는 폭발해도 괜찮도록 결계를 칠게."

"아니, 그게 아니라..."

카렌의 당돌한 말투에 나는 내심 기가 막혔다. 좋아, 니가 그렇게 나온다면...

"으음, 결계를 두른다면 물론 우리는 무사하겠지만 인접해 있는 다른 가게들이 별로 무사하지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나중에 집주인이나 다른 상인들이 불평하러 올 때 카렌이 어떻게 해 준다면 네 뜻대로 해도 괜찮아♡"

"그건 싫어..."

역시나.
인간관계의 생성과 유지에 극도의 어려움을 겪는 카렌을 어르는 데는 역시 이 방법이 최고라니까.

"할 수 없지... 역시... ...에 가는 수밖에..."

카렌의 기를 꺾어 놓는데 성공한 내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어렴풋이 카렌이 작게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카렌? 방금 뭐랬어?"

"마법 실험을 하려면 마계에 가는 수밖에 없다고..."

"뭐?!"

해도 해도 너무한 발언에 무심코 소리 지르는 나.

"마법석도 필요하고... 폭발해도 괜찮을 만큼 넓은 공간도 필요하고... 인간들이 불평하는 것도 듣기 싫으니까... 그러면 마계로 가는 수밖에 없잖아?"

-아니, 그건 그렇지만... 마계로 가면 잔소리 듣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위협당할 텐데.
그러면은 뭐가 그러면이야, 이 아가씨야...
나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몇 번째인지 세는 것도 질린다. 카렌의 기를 꺾어놓았다는 건 아무래도 나만의 착각이었던 듯하다. 이 철부지 아가씨를 대체 어떻게 설득해야 좋을까?

"...카렌, 말해두겠는데 그 재료들, 맘대로 섞었다간 폭발할 가능성이 무지무지 높으니까. 일단 건드리지 말아줄래?"

내가 사 온 봉투에 호기심이 동했는지 멋대로 손을 뻗는 그녀를 향해 일단 못을 박아둔다.
...안돼.
이대로 카렌의 페이스에 휘말려 끌려 다니다간, 언젠가 아버지께 들켜 설교를 빙자한 잔소리를 세월아 네월아 들어 줘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지도 모른다. 할 수 없지.
나는 작은 결의를 품고, 신이 나서 재료를 꺼내드는(방금 내 말은 콩으로 들었냐!) 카렌을 향해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