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 : 흐음... 의외의 결과라고 해야 할지,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할지...

브리짓 : 왜요? 안 좋게 나온 거예요?

헤르메스 : 별의 배치가 드문 경우로군. 알 수 없는 기운이 별에 드리워져 있지만 걱정할 건 없어. 아가씰 거치지 않고 그냥 지나칠 거 같으니. 허나 희한하군...

브리짓 : 뭐가 말이죠?

헤르메스 : 아가씨의 별은 아주 보기 드문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그 위치가 아주 평범해. 마치 본능이나 적성으로부터 눈을 돌려놓으려는 것처럼. 게다가... 왜 나와 같은 별의 움직임을 보이는 걸까? 이히히...


-1446년 1월 1일, 브리짓 피시만을 위한 예언에서

 


오늘도 영업을 위해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을 무렵, 구름 속에 갇혀 있던 해가 고개를 슬쩍 내밀어 수줍은 미소를 보내 왔다.
온종일 흐릴 거라던 일기예보가 오늘은 빗나갈 예정인가보다.
별들의 움직임을 조사해 보면 그 날의 날씨 정도는 금방 알아낼 수도 있지만, 난 웬만해선 그런 이유로 내 능력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하잘것없어도 미래는 미래. 자꾸 점술 같은 것에만 의지해 현재와 부딪히는 걸 회피하려 들면 나쁜 버릇이 들어 결국 점술에게 자기 인생을 지배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테니까.
뭐, 나야 이런 걸로 먹고살고 있으니까 문제가 닥쳤을 때 스스로 대처하기보단 바로 쪼르르 달려오는 의뢰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서, 선생님! 지난번에 봐주신 점이 맞았어요! 이젠 덕분에 맘 편이 숙면을 취하고 있어요. 이게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구석 한켠에서 장사할 준비를 마치고, 첫 손님이 언제쯤 올까 기다리며 수정구에 비친 도플갱어에게서 다른 점이 있는지 흘깃거리고 있을 때-
며칠 전 나를 찾아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고문을 당하고 있다며 울 것 같은 얼굴로 상담했던 의뢰인이 다시 방문해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무슨 문제냐고? 별 것 아니다. 물론 당사자에겐 크나큰 골칫거리였겠지만.
새로 이사한 집에서 매일같이 가위에 눌리고 악몽을 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미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수정구를 통해 파악한 이유는 간단. 의뢰인의 잠자리 바로 밑에 수맥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물론 의뢰인이 보통 사람보다 심약한 탓도 있었지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고 잠잘 방을 바꾸거나 방의 가구 위치에 변화를 주면 괜찮아질 거라는 대답에 반신반의하고, 적정가 이상의 복채 요구에 사기당하는 거 아닌가 의심했던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매일같이 장사 자리를 바꾸는 나를 영업시간에 맞춰 단박에 찾아 감사 인사를 건네는 것이 그 증거.
추가하자면 오늘 내가 자리 잡은 곳은 다크타운의 한 구석.
나와 같은 업계에 종사했던 선배(라기엔 나이가 너무 많지만)의 조언에 따르면, 정해진 곳에서 오래도록 장사하는 것보단 요리조리 바꾸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단다. 같은 자리에 지나치게 오래 있으면 별들의 움직임을 읽는데 방해가 된다고도 하고, 또 자리를 자주 바꿔주는 게 아무 때나 만날 수 없다는 인상을 퍼뜨려 손님들로 하여금 스스로 애간장을 태우게 할 수 있다나?

"참 다행이군요.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물론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의뢰인의 장단에 맞춰 묘한 암시를 깔며 정중하게 인사를 받았다.
사실 말하기 전까진 눈곱만치도 눈치 못 챘다고 말하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걸 골랐다간 하루아침에 손님이 전부 떨어져나가 장사를 접어야 할 거다. 인생을 사는데 약간의 허세는 필요한 법이지, 암.

"선생님, 제 운세도 좀 봐주세요!"

"저도 부탁드립니다! 엄청 급한 일이...!"

봐봐, 바로 입질이 오잖아.
할 말 다 했으면 그만 비키라며 첫 손님을 제치고 다음 손님들이 앞 다투어 손을 들어 발언권을 청한다.
이제 슬슬 입소문을 타는 단계니까 이 정도 인파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여러분,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오신 순서대로 다 잘 봐 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 차례대로 줄을 서 주세요!"

나는 박수를 쳐 무너지려는 질서를 바로잡고 모여든 손님과 구경꾼들을 통제했다. 내버려뒀다가 사고가 나거나 경비병이 태클을 걸어오면 제대로 대응하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에헤헤, 그럼 저부터 좀 부탁드릴게요."

감사 인사를 전하러 온 페이크 의뢰인이 나중에 곤란한 일이 있으며 또 찾아오겠다는 인사를 남긴 뒤 자리를 벗어나자 두 번째로 와 있던 진짜 의뢰인이 냉큼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배시시 웃었다.
아직 앳된 구석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숏컷에 주근깨가 박힌 보이쉬한 소녀. 나이는 아무리 많게 잡아도 10대 후반을 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무슨 일로 왔는지 한 번 맞춰 볼게요. 좋아하는 사람이랑 잘 되고 싶은데 짝사랑이라 힘들어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마침 내 소문을 듣고..."

나는 의뢰인에게서 받은 인상과 풍기는 이미지만으로 과감하게 승부수를 띄웠다.

"어쩜... 아무한테도 말 안했는데 보자마자 바로 알아내시다니...! 역시 소문대로군요!"

부정하면 다른 식으로 파고들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운 좋게 한 방에 당첨된 것 같다.
발갛게 상기된 뺨을 움켜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녀의 뒤로 줄을 선 고객들의 웅성거림이 산들바람을 타고 부드럽게 퍼진다.

"어떻게 알아냈는진 영업 기밀이라 말할 수 없지만요... 그럼 구체적인 이야기를 좀 들어 볼까요...?"

 


"후아아, 지친다..."

슬슬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길게 서 있던 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10년 뒤에 무슨 직업을 갖을지에 대해 물었던 마지막 손님이 눈에 띄게 시무룩한 표정(내가 별을 통해 알려준 직업이 맘에 안 들었나보다)으로 나가자, 한동안 북적였던 게 거짓말처럼 소란스러움이 딱 끊기고 주변에는 적막감만이 감돈다. 이따금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이 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걸 증명할 뿐.
나는 근처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혼잣말과 함께 기지개를 켜 어깨에 들러붙은 피로를 떨어냈다.

이 길을 선택한 지 어인 1년.
주변에선 적성에 맞는 일을 택했다면 격려해줬지만... 아버지만은 나를 인정해 주시지 않았다. 원체 마법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계시므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말이다. 아마 궁정마도사가 되더라도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버지만은 이 길을 걷는 걸 이해해 주시지 않고 있고, 그 점은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는 이 직업이 아주 마음에 들어. 아버지는 아직까진 이 일을 계속하는 걸 반대하고 계시지만... 언젠가는 날 인정해 주시리라 믿는다.
근자감 같은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아버지와 직업의 안정성과 내 결혼 여부에 대해 이야기하다 가볍게 말다툼을 했을 때, 대체 아버지께서 언제까지 이 일을 반대하실까 싶어 스스로 점을 쳐 봤는데 기쁘게도 이제 슬슬 아버지도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결과가 나왔거든. 내 점은 항상 잘 맞았으니까, 이번에도 꼭 맞을 거야♡
어느 새 나만의 세계에 빠져버린 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손님이 왔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수정구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의 존재를 겨우 눈치 채고 얼굴을 들자, 언제 온 건지 청회색 후드를 깊이 눌러쓴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무엇을 알고 싶으셔서 찾아오셨나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깔고 용건을 물었다.
그냥 직감일 뿐이지만... 이 사람에게는 깊이 관여해선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후드를 눌러쓴 건 뭐, 자기 얼굴을 당당히 드러내고 점을 보기에는 용기가 부족한, 혹은 주변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사람들도 간혹 있으니 그다지 신경 쓰이진 않지만...
의뢰인에게서 배어나오는, 전신을 감싸는 오한과도 같은 냉기가 내게 묘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근시일의 미래를 알고 싶다."

의뢰인이 말했다. 어쩐지 만들어진 것 같은 부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네에..."

나는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겨우 고개를 끄덕이곤 주섬주섬 손을 놀려 점칠 준비를 마쳤다. 장래에 뭐가 될질 알려달라거나, 누구랑 맺어지게 될지가 궁금하단 의뢰는 수도 없이 받아봤지만... 다짜고짜 가까운 미래를 알고 싶단 의뢰는 솔직히 말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 이상하네...?!"

내용이야 어쨌든 의뢰는 의뢰. 나는 여느 때처럼 카드를 섞어 놓고 주문을 외워 수정구에 마법을 걸었는데...

"뭐 문제 있나?"

목소리가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결과가 좀 이상하게 나온 거 같아서요..."

평소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말끝을 흐리는 나.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배우자를 전쟁으로 잃게 될 거라든지 하는), 유감이라는 위로를 하는 경우는 간혹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대체 무어라 해석해야 할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별의 배치에요. 뭐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본 대로만 얘기하자면... 사람의 상이 아녜요, 이건."

해석하기 힘들다면 본대로 얘기해주는 수밖에.
나는 수정구와 의뢰인을 번갈아보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얘기해서 미안하지만... 손님은 평범한 삶을 얻기 위해선 커다란 노력이 필요할 거라고 나오네요. 운명의 갈래는 몇 가지 보이긴 하는데 어느 쪽을 선택하든 전부 순탄치 않을 거구요... 자세히 말하자면..."

좀 더 세부적인 이야기를 꺼내려던 난 의뢰인이 손을 들어 올리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만하면 충분한 것 같군."

의뢰인이 말했다.

"예? 하지만 자세한 사항은 아직 얘기하지 않았는걸요. 운명의 갈래라든가..."

"필요 없다. 알고 싶은 것은 전부 알았으니까. 구태여 전부 설명할 필요는 없어."

-뭐... 설명이 필요 없다면 나야 고맙지.
굳이 의뢰인이 필요 없다는데 붙들고 이야기하는 것도 바보 같은 짓.
나는 알겠다는 의사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품에서 돈을 꺼내 내게 내밀어-

"고맙지만 이번 복채는 안 받을게요..."

나는 그것을 마다했다. 돈을 손에 쥐고 멈칫한 의뢰인을 향해 나는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점술가이면서도 의뢰인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까요."

내가 생각해도 좀 궁색한 변명을 내놓는다.
아니, 애초에 얼굴도 안 보이는 사람이었던 데다 자기 입으로 괜찮다고까지 했는데 왜 난 되도 않는 변명까지 해가며 돈을 마다하는 거지...?
머리 속에선 의문이 떠오르지만 이유를 탐구할 시간은 없다.
나는 다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의뢰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굳이 원한다면..."

자잘한 건 신경 쓰지 않는 건지, 아님 단순히 복채가 굳어 좋은 건지, 의뢰인은 그 짧은 한 마디를 던지곤 인사 한 마디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응? 어둠?
고개를 들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마을에 깔리기 시작하는 어둠.
맙소사, 아까 그 손님을 받을 때만 해도 이렇게 어둡진 않았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거야?
얼른 가야겠다며 수정구며 카드들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마지막 손님과는 다른 평범한 인간의 낌새.

"죄송합니다. 오늘 영업은 끝났거든요."

상대가 평범한 인간이란 걸 알자 안심하고 제대로 할 말을 하는 나.
다음에 와 달란 인사를 하려고 눈을 든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내 앞에 서 있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