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나는 붉은 실이 끊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했을 일상 & 4. 운명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카고메가 점술관에서 불길한 점괘를 받은 지 2주일이 흘렀다.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지금껏 그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이따금 점괘 이야기를 꺼내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히로코를 다독이며 카고메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점술이란 건 어림짐작으로 사람의 마음을 휘젓는 유치한 장난질이었다.

카고메는 애초에 점술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절친의 성화에 못 이겨 함께 점을 본 이후로 점술을 더욱 멸시하게 되었다.

진로 상담을 받기 위해 상담실로 불려간 켄이치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불쾌한 점괘가 나와 불안하겠다며 다시 사과하려 드는 히로코를 저지하며 카고메는 냉랭한 어조로 점술에 대해 차가운 평가를 내렸다.

"이것도 전에 얘기했던 거지만, 점술 결과에 컨디션이 왔다 갔다 할 만큼 정신을 딴 데 빼놓고 다니는 애가 아니란 걸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몇 번째 얘기하는 거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아. 고작 그깟 점 때문에 마음이 동요해서 성적이 나쁘게 나온다면 그거야말로 참 한심하다고 봐. 얼마나 자기 관리를 못 하길래 그런 것에서 핑계거리를 찾는 거람?"

"하지만... 그 아저씨는 네가 운명을 거스르려고 하면 험한 꼴을 볼 거라고 말했잖아. 정말 하나도 겁 안 나?"

"이것 봐. 그렇다니까."

카고메는 다소 거만한 동작으로 어깨를 들썩거려 보였다.

"점술이란 건 다 그런 식이야. 있을 법한 사실 몇 개를 늘어놓고 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거지. 대개는 그 술수에 넘어가서 자기 정보를 줄줄이 털어놓고 점쟁이는 그걸 토대로 이러면 된다, 저러면 된다 하고 충고랍시고 늘어놓는 거야. 아니면 이런 걸 하면 안 된다고 겁을 주거나. 결국 점쟁이들이 가진 능력은 진짜 예지력 같은 게 아니라 사람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상대를 구워삶는 화술, 그리고 상대가 무슨 성격인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잡아내는 눈썰미, 이것뿐이야. 마술도 뚜껑을 열어보면 별 거 아니듯, 점술도 마찬가지라구. 별것도 아닌 걸 거창하게 포장해서 그럴 듯하게 풀어내는 것뿐이라니까?"

"별 것도 아닌 걸 지나치게 부풀려서 포장하는 게 과연 그것뿐일까?"

점술을 믿을 필요 없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정신이 팔린 카고메는 자신의 등 뒤로 다가온 불쾌한 그림자를 눈치 채지 못하고, 별안간 들려온 차가운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머, 뭐니 그 눈은? 뭐 못 볼 거라도 본 거니? 아님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 거야?"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한 카고메는 절로 찌푸려지는 눈살을 애써 바로잡으며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글쎄, 굳이 대답해 주지 않아도 거울을 보면 답이 나올 것 같은데. 안 그래?"

"흠, 하긴 거울 속에 담이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거울을 봐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너 같은데."

"뭐야?"

이유는 모르지만, 날 못 잡아먹어 안달 난 동급생을 상대할 때는 최대한 냉정하게 대처하며 무슨 말을 듣더라도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하자-

이 관용구가 바로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는 시라사키 학원의 간판스타, 뭇 남학생들의 선망어린 시선을 독점하며 교사들의 칭찬을 독차지하는 한 떨기의 장미 - 프랑스 출신의 이방인, 아셰트 제노와즈를 대하는 코이소 카고메 나름대로의 방책이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되뇌면서도 막상 제노와즈를 마주할 때마다 신경을 거스르는 그녀의 말투에 매번 평정심을 잃고 발끈한다는 슬픈 현실은 저 구석진 곳으로 조용히 치워두도록 하자.

아셰트 제노와즈는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카고메를 오만한 푸른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무슨 뜻인지 모를 것 같으니까 친절히 설명해 주자면, 넌 네 분수를 좀 더 알 필요가 있다는 거야. 뭐,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처신하고 있는 것 같지만. 혹시라도 자만심에 빠져서 주제를 잊어버리고 나서는 일은 없도록 해. 네 행동에 네가 책임지는 거면 몰라도,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여서는 안 되니까 말야. 그렇지 않니?"

카고메는 제노와즈의 말을 들으며 살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불쑥 튀어나와서 시비를 거는 것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막상 마주할 때마다 욱하는 감정은 있지만, 끝까지 페이스에 질질 끌려 다니지는 않는다.

뭐라고 지껄이든 무시하거나 꼬투리를 잡아서 받아치거나, 똑같은 짓을 해 주거나 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인간은 성장하는 동물이니까, 근에 대한 데이터가 내부에 쌓일수록 그것을 분석하여 상황에 따른 적당한 돌파구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 방금처럼 새로운 패턴의 공격방식에는 대체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자신의 스펙에는 따라올 수 없다며 깔아뭉개는 패턴은 질리도록 접해봤지만 걱정하는 것인지 빈정거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패턴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또 하나.

"너 왜 자꾸 카고메한테 시비 거는 거야? 운동 만능에 성적이 톱이라고 해도 카고메한테 밀리는 데가 있어서 질투하는 거 맞지? 떠받들어 주는 사람은 많아도 진짜 좋아해 주는 사람은 없다거나! 내 말이 틀려?!"

켕기는 구석은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카고메가 그 '알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끌어내기 위해 생각의 늪에 뛰어든 것을 어이가 없어 대꾸하지 못하는 것이라 판단한 히로코가 친구를 감싸기 위해 대신 아셰트 앞에 나섰다.

"한참 틀려. 우선, 내가 저 아이보다 꿀리는 게 있다면 네 입으로 지금 한번 말해 볼래?"

제노와즈는 눈을 치켜뜨면서도 입을 다문 카고메를 흘깃 바라보면서 재차 말했다.

"말을 못 하는구나. 하긴, 얘기할 거리가 있을 리 없지. 게다가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 주자면 난 이미 데이트 상대가 있고 충분히 재미도 보고 있어. 이 학교에 있는 잉여들 따위가 떠받들어 주는 건 전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야. 솔직히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그만두라고 말하기도 귀찮으니까 가만 내버려 두는 것뿐이고. 아, 하지만 넌 백날 깨어나도 이해 못할 테지. 연예인에 휩쓸리기나 하는 멍청한 빠순이니까 말야. 안 그래?"

"그만하지 못 해?!"

생각하던 것도 잊은 채, 카고메가 벌떡 일어서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녀의 석류빛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올곧게 상대를 쏘아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작은 주먹은 휘몰아치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 이상 지껄이면 정말 가만 두지 않겠어."

카고메는 무미건조한 어조로 조용히 말했다.

"네가 나한테 시비를 거는 건 참을 수 있어. 아니, 사실 참을 순 없지만 그렇다고 말릴 수도 없겠지. 네 자유니까 거기까진 상관하지 않겠지만, 내 친구들한테까지 똑같은 짓을 하는 건 절대 안 돼. 그래도 네가 그만두지 않겠다면 나도 너랑 같은 수준으로 놀도록 하겠어."

본인을 비난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까놓고 말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 그만인 일이었다. 본인만 신경 쓰지 않으면 조용히 덮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신경 쓰거나 상처받거나 화를 내는 사람도 있으리라. 그리고... 특히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그런 시비에 휘둘리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다.

제노와즈는 카고메의 이글거리는 불꽃에 맞서 푸른 호수를 빨아들인 눈동자를 부라리다가 새침한 혓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난 그냥 집에 가야겠어."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작은 공간에서 제노와즈의 작아지는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고메가 한숨을 내쉬며 드리워진 침묵의 장을 깨뜨렸다. 자신의 눈치를 보는 친구의 강아지 같은 눈망울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본심을 숨긴 채.

"어? 하지만 켄이치 진로상담 받는 거 기다린다고 지금까지 남아 있던 거..."

"몰라. 그냥 갑자기 피곤해져서. 켄이치한테는 먼저 간다고 문자 보내놓지 뭐. 지금까지 같이 기다려 줘서 미안한데, 오늘은 그냥 나 혼자 갈래."

"어, 응... 난 신경 안 써도 되니까 얼른 가서 쉬어. 그리고... 아까 걔는 너무 신경쓰지 마. 걔가 한두 번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런 말은 그냥 무시해. 응? 나도 걔가 뭐라고 지껄인다고 신경 쓰거나 하지 않아."

카고메는 히로코에 대한 고마움이 왈칵 치솟았다. 자신이 그녀에게 위로하려 했던 말을 자신이 직접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어... 정말 고마워. 원래 내가 너한테 해줘야 하는 말인데 내가 들으니까 오히려 기분이 묘하네..."

"폼으로 베프먹은 건 아니잖아. 너랑 알고 지낸 지가 몇 년인데 그 정도도 모를까 봐?"

"하긴... 그 말도 맞네."

마음의 친구의 진심어린 위로에 기분이 조금은 풀렸는지, 카고메는 겨우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릴 수 있었다.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문제를 계속 붙잡고 늘어지는 건 시간만 낭비하는 짓. 나중에 목욕이라도 하고 나서 다시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지금은 일단... 학교에서 벗어나도록 하자. 그 다음에 무엇을 할 건인지는... 나가서 생각하도록 하자.

마음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그녀는 조용히 가방을 집어 들며 같이 기다려 주던 친구에게 사과의 말과 함께 작별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