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가와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

요 근래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나를 주시하는 것이 흡사 먹잇감에 눈독을 들이는 맹수처럼 보였다.

그 애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과 관련하여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건가?

혹시라도 뭘 물어보더라도 무조건 모른 척 하는 게 상책일 것이다.

젠장, 대체 왜 쓸데없는 호기심을 가져서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2009년 1월 20일, 아사쿠라 켄이치의 블로그에서

 

 

누군가에게는 평범했을 일상 & 17. 덧없는 인연

 

 

딩동.

히메미야 마을 중간에 위치한 코이소 가(家)의 초인종이 울렸다.

얼굴을 반쯤 가린 집사에게 응접실로 안내받은 히로코와 에미리는 집안을 가득 메운 메마른 공기에 바짝 긴장하며 손님용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래, 무슨 일로 온 거지?"

과거 몰리뉴 왕국에서 큰 공을 세운 뒤 은퇴하여 차원 이동의 의식을 통해 이 세계로 들어와 코이소 스미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던 용사는 자신을 찾아온 두 손님의 눈을 보며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물론 용건을 짐작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아직 앳된 기색이 얼굴에 남아 있는 두 손님은 시라사키 학원의 교복을 입고 있고, 교복 앞섶에 매여 있는 리본은 그들이 졸업을 1달 반 정도 남겨 둔 3학년생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만큼 단서가 있다면 싫어도 답을 구할 수밖에 없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아주머니께서는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히로코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당당한 얼굴로 절친의 어머니에게 맞섰다. 평소에는 좀처럼 볼 수 없던 희귀한 동급생의 일면을 본 에미리는 그녀에게 재미있다는 시선을 던졌다.

"다 알고 계신 것 같지만 예의상으로라도 일단 저희가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리는 게 좋겠네요. 저희는 어째서 카고메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요."

에미리는 이번에야말로 특종을 잡아내고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용건을 밝혔다.

코이소 카고메와 아사쿠라 켄이치의 행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에미리가 알아차린 것은 12월 중하순, 겨울방학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1쌍의 바퀴벌레마냥 항상 붙어 다니던 두 사람이 시험기간 중반을 기점으로 하여 갑자기 서로를 생까기 시작했던 것이다.

연인 사이에서 벌어진 사랑싸움이라 치부하기에는 서로를 공기 취급하는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기사거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기자로서의 사명감과, 직접 겪고 싶지는 않지만 알고는 싶은 군중심리를 방패로 내세워 에미리는 3학기가 시작되는대로 공감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어 카고메에게로 접근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알아내겠다고 마음먹었으나-

3학기가 시작되고 약 보름이 지났지만, 코이소 카고메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덤으로 시라사키 학원의 여신으로 불리던 아셰트 제노와즈도 함께.

고교 졸업을 50일 가량 앞둔 시점에서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나마 제노와즈의 경우는 부모님의 일 때문에 급하게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이유라도 들을 수 있었지만(이 정보도 담임선생님을 닦달해서 겨우 알아낼 수 있었다), 카고메의 경우는 집안사정이라는 단어 하나로 일축할 뿐, 마당발로 유명한 에미리의 능력으로도 어떤 사정이 있는지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에미리는 다른 경로로 정보를 얻기 위해 카고메와 가장 친했던 히로코를 꼬셔내 그녀를 앞세워 카고메의 보호자를 찾아가 그녀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이유를 물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마. 지금 너희가 신경 써야 할 건 친구가 아니라 대학이 아닐까?"

"센터 시험은 이미 치렀고, 원서도 이미 접수시켰어요. 들어갈 대학을 신경 쓴다고 해 봐야 손톱 물어뜯으며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일도 없는걸요. 그러니 친구에게 신경을 써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마가와, 너무 세게 나가는 거 아냐...?"

친구 어머니의 눈매가 가늘어지는 것을 목격한 히로코가 에미리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우물거렸지만 에미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맞은편에 앉은 여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고교 졸업이 두 달도 안 남은 시점에서 학생이 이유 없이 등교하지 않는다는 건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누가 들어도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진작에 부모님께서 학교에 통보하셨을 거고, 가출이나 은둔형 외톨이 같은 이유로 등교하지 않는다고 해도, 보통의 부모라면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 병결 같은 허울 좋은 핑계라도 되는 법인데...

아주머니께선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으셨네요. 이대로 두면 졸업도 장담하기 어려울 텐데 말이죠. 그리고 아까 집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잠깐 신발장을 봤는데 여고생이 신을 만한 신발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이유가 대체 뭔가요?"

히로코는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카고메가 왜 학교에 나오지 않는지 알고 싶지 않느냐는 꾐에 빠져 에미리를 따라나선 것을 끝없이 후회하면서.

한번 마음먹은 일에 대해 어지간해서는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도, 마음먹은 일을 완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거침없이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별다른 커뮤도 맺지 않은 사람에게(그것도 한참 어른에게) 자신의 뜻을 관찰시키려는 것은 히로코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화나서 호통 치시면 어떡하지?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명령해 내쫓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시키지도 않은 걱정거리를 하나 둘 쌓아올리며 멋대로 건물을 구축하려는 히로코의 노력(?)도 부질없이 용사는 단 한 번도 화를 내는 일 없이 묵묵히 에미리의 얘기를 들었다.

"그래, 여기까지 발걸음을 한 이유는 잘 알겠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용사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이 열리자 히로코는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로잡았고, 에미리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전에 먼저 이마가와 양, 고교생답지 않은 말솜씨와 뛰어난 눈썰미에 대해서는 칭찬해 주지. 오래 전에 그 아이가 너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말 그대로구나. 에미링 뉴스의 편집장이라고 들었는데, 장래에 기자가 되겠다는 꿈이라도 가진 모양이지?

타고난 눈썰미와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미래의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충고를 하나 해주지. 상대에게 말을 걸어 원하는 대답을 끌어내는 것은 순전히 질문자의 능력에 달려 있어.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청자의 성격과 특성을 잘 파악해서 그에 걸맞은 태도로 다가가야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거야.

참고로 독립심 낮고 소심하고 매사 타인의 말을 따르기만 하는 사람(이 말을 할 때 용사는 살짝 히로코를 주시했다) 외에는, 자신이 가진 수를 드러내며 상대를 압박하는 전술 따위는 통하지 않는단다."

"그게... 무슨 뜻이죠?"

"시도는 좋았다만 그 아이에 대한 비밀을 말해주기에는 너희가 미덥지 않다는 뜻이란다. 말하고 싶지 않다 그거지. 너희들에게는... 그래,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밖에 해 줄 수가 없구나."

"미덥지 못하다뇨? 저흰 카고메의 친구라구요!"

히로코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용사의 얼굴에서 미소의 흔적이 싹 사라졌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 남은 감정의 미립자를 걷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그 아이의 친권자였단다. 친구라고 주장하니 하나 말해주지. 그 아이는 이제 이곳에 없어. 자신이 가져야 할 본래 몫을 가지고, 평생 편안히 보살펴 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떠났어. 두 번 다시 돌아오지도 안아. 그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건 장담할 수 있으니 더 이상 그 아이에 대해 신경 쓰지 말고 너희의 앞길에 대해서 신경 쓰도록 하려무나. 집사."

"예, 주인님."

용사는 짧은 담소를 나누는 동안 그녀의 곁에 서서 대기하던 집사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얘기가 끝났으니 아가씨들을 밖으로 안내해 주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하, 하지만... 저흰 아직 얘기가 안 끝났는데요..."

히로코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작은 소리로 항변했다.

용사는 무뚝뚝한 얼굴로 다가와, 턱 하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은 뒤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

“히로코 양. 주인은 언제든 자신의 의사로 들인 손님을 자기 맘대로 내쫓을 수 있단다... 퇴거 명령을 무시한다면 법의 힘을 빌려서라도 내보내도록 하겠어. 그러니 괜한 분란 일으키지 말고 얌전히 돌아가는 게 어떻겠니?"

"그건..."

히로코는 움찔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용사가 소리 없이 다가와 자신의 어깨를 건드렸을 땐 이유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알겠어요. 시간 내주셔서 고마웠어요, 아주머니."

별안간 에미리가 벌떡 일어나 히로코의 손목을 꼭 붙들고 용사에게 넙죽 고개를 숙였다. 표정을 일그러뜨려 항의의 뜻을 비치는 히로코를 눈짓으로 제압하면서 에미리는 태연한 미소를 지었다.

"주제넘게 나선 거라면 사과드릴게요, 아주머니. 카고메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만. 행복하게 잘 산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에미리는 방금 전의 소동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문턱을 빠져나왔다.

"너 대체 아까 왜 그랬던 거야?"

히로코는 카고메의 집을 빠져나와 이나리 산 근처의 황폐한 절에 다다르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며 안도의 숨을 내쉬는 에미리에게서 자신의 손목을 잡아 빼내며 따져 물었다.

에미리는 자신의 손을 쓰다듬으며 그것도 모르냐는 시선으로 히로코를 쏘아보았다.

"왜 그랬냐니? 몰라서 묻는 거야?"

"몰라서 묻지, 알면 물어볼 리가 없잖아? 카고메가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연락할 수 있는지, 왜 다른 곳으로 가버렸는지 묻지도 못했는데 그냥 나오면 어떡해? 다음엔 들여보내주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히로코,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해 봐."

에미리는 정색하며 말했다.

"그 아주머니, 뭔가 알고 있다는 얼굴을 하고 계셨어. 아니, 애초에 사정을 모른다면 그리 태연하게 계실 리가 없지. 어쨌든 뭔가를 알고 있는데도 우리한테 말해주지 않는다는 건, 말 그대로 얘기할 생각이 없다는 거야. 그럼 거기 계속 있을 필요가 없잖아."

"그럼 다른 식으로 파고들어야지! 끈질기고 집요한 네 성질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잖아. 예전에 에미링 뉴스 인물특집 기사를 만들 때 안 하겠다는 학생을 1주일이나 쫓아다녀서 결국 취재해 성공한 적도 있잖아!"

"내가 끈질기고 집요하다고?"

"아니야?"

에미리는 오른손을 치켜들었다가 인상을 쓰며 손을 내렸다.

"뭐... 네가 생각하는 내 이미지 같은 아무래도 좋은 문제는 냅두고, 네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그것도 사람을 봐가며 해야 하는 거라고. 너한테는 통할지 몰라도, 그 아주머니께는 안 통해."

"...나한테는 통할 거라는 게 무슨 뜻이야?"

"아, 별 뜻 없어. 자기 주관 없이 남의 말이나 유행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너라면 강하게 나가거나 막 물고 늘어지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거라는 뜻이야. 이건 중요한 얘기가 아니니 넘어가기로 하고-"

에미리는 적절한 타이밍에 말을 끊어 발끈하려는 히로코를 저지한 뒤 재차 말했다.

"어쨌든 이 이상 정보를 캐내는 건 무리라고 생각되니까 난 빠질래. 뭐, 카고메는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고, 돌아올 생각도 없는 것 같고, 아주머니도 만나거나 찾으려는 생각은 안 하시고 그냥 방관하려는 것 같으니까."

"무슨 소리야? 빠지겠다니!"

"이유는 방금 말했는데.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포기하자고."

"어떻게 그렇게 금방 포기할 수가 있어? 이유 없이 친구가 연락을 끊었는데 걱정도 안 돼? 그리고 넌 기사거리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애도 아니잖아!"

"저기, 히로코."

에미리는 차분한 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었다.

"감정에 모든 걸 맡기지 말고 주변을 관찰하는 능력부터 기르도록 해. 이건 반 친구로서 하는 충고야. 나한테 따지는 걸 보니 전혀 눈치 못 챈 모양인데, 아주머니는 우리랑 얘기하는 내내 한 번도 자기 딸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어. 그리고 자신을 카고메의 '친권자였다'고 표현했지.

부모도 보호자도 아닌 법정 대리인일 뿐이었다는 뉘앙스와 과거형 표현, 그리고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한 담담하고 차분한 모습. 자기 딸이 이유 없이 사라졌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 애가 어째서 그렇게 행동했는지 전후사정을 다 아는 게 틀림없다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말할 생각이 없다는 것도.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럼 어떻게 할까? 포기하는 수밖에 없잖아."

"하지만... 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걱정도 안 되고?"

히로코는 얼굴에 가득 매달린 눈물을 한 방울 떨구며 중얼거렸다. 에미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우는 반 친구의 등을 토닥였다.

"박정한 얘기라고 생각화지만, 사실 별로 걱정은 안 돼. 난 걔랑 마음의 친구도 아니고 그냥 같은 반 친구일 뿐이잖아. 본인 어머니가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장담도 하셨고. 걱정한다고 걔 소식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그럼... 에미링 뉴스는?"

크... 또 그 수리야. 에미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항변했다.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난 모처럼 잡은 기사거리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의 사생활을 파괴하면서까지 뒤를 캐는 짓은 절대 안 해. 정치 스캔들이라거나 범죄 사실이라거나 학교 내 비리 같은 공공의 알 권리를 우선해야 하는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개인의 비밀을 그저 궁금하다는 이유로 까발리는 짓은 안 한다고. 그건 편집장으로서의 내 프라이드가 용서 못 해!"

굳은 얼굴로 자신의 지론을 토해낸 에미리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히로코를 주시했다.

"다신 돌아오지 않을 거라니 너도 그만 포기해. 걱정해 봤자 네 힘만 빠질 테니까. 난 먼저 간다."

"어디 가려고?"

"집에. 카고메는 깨끗이 포기하고 아셰트 쪽을 파볼까 해. 전혀 근거는 없지만 아무래도 내 생각엔 둘이 학교를 안 나오는 게 서로 관련이 있을 것 같단 말이야. 어서 가서 조사해 봐야지."

에미리는 잘 가라는 인사만 툭 던지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먼저 내려가 버렸다. 혼자 남은 히로코는 애꿎은 하늘을 원망스럽게 올려다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카고메... 넌 대체 왜 한마디 말도 없이... 어디로 가 버린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