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던 무언 가와의 조우.

그것은 인간이 자연스레 느끼는 원초적 공포의 서말.

 

 

누군가에게는 평범했을 일상 & 외전 : 춤추는 칼날 속에 드리워진 감미로운 멜로디 (前)

 

 

이상하다.

이변의 전조를 느낀 나는 무심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 이름 모를 벌레가 울어대는 조용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어떤 사실을 깨닫고,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고요한 밤을 향해 눈과 귀를 곤두세웠다.

아까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기운이 주위에 드리우고 있었다.

어느 샌가 멈춰버린 벌레 소리. 어느 샌가 사라져 버린 두 사람의 기척.

소리가 끊기고,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 뒤덮인 은근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느낌이 피부 속으로 파고든다.

달리 뭐라 설명해야 좋을까...

공수도 도장에서 대전 훈련을 할 때 상대가 보이던 투지나 투쟁 의지와는 뭔가 달랐다.

좀 더 날카로운, 누군가를 향한 명백한 적의.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굳이 추리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만나서 한 대 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마음속으로 조금 실없는 생각을 해보는 나.

초등학교로 처음 전학 왔을 때도, 엄마와 큐브와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의 나는 내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건 처음이 아니다, 이건 아주 위험한 징조라고.

대체 뭘까 이건... 끈적하고, 예측할 수 없고, 더할 나위없이 기분 나쁘다.

"숨지 말고 당당히 나오는 게 어때? 그 정도 기척은 누구라도 읽어낼 수 있다고!"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나는 아무도 없는 골목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만약 여기서 아무 변화가 없다면 나는 한없이 쪽팔린 기분을 맛보게 되겠지만, 만약 누군가 날 노리고 매복하는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직접적인 도발을 받아넘길 리는 없을 것이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기분 나쁜 기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후우..."

후퇴한 것이라고 멋대로 단정 지은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딸랑.

언젠가 들어보았던 방울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방울 소리에 긴장을 풀었던 세포에 한순간 전율이 일었다.

소리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확실히 인간의 청각은 다른 감각보다 공포의 감정에 반응하기 쉽지만, 평범한 방울 소리에 일일이 놀라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그 방울소리가.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

중학교에 입학하기 몇 달 전, 어디선가 들어 본 방울 소리에 집 밖으로 나가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찝찝했지만 분명 잘못 들은 것이라 판단하고 신경을 껐지만, 이제 보니 아무래도 환청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기분 나빠..."

목에서 새어나온 감정이 담긴 한숨.

사실 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상당히 약한 편이다. 아니,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종류가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공포에는 익숙해질 수 있어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공포는 받아들일 수 없는 법이다.

예를 들어 적의와 함께 다가오는 깡패라면 얼마든지 때려눕힐 자신이 있지만, 형체가 없는 귀신은 내 능력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감정도 잠시.

누군가 저벅저벅 다가오는 소리가 내 귀에 똑똑히 들렸다.

보이지 않는 침입자가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다.

제압할 수 없는 어둠은 어쩔 수 없지만, 손에 잡힌다면 얘기는 다르다.

타이밍을 봐서-

"스타일이 달라졌군, 아가씨."

다짜고짜 상대가 시시껄렁한 말을 지껄이는 동안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려 그 반동을 이용해 목소리와 낌새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런데- 아무 느낌도 없다.

-맞질 않아?!

허를 찔린 내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을 때, 음침한 기운과 함께 부드럽고 차가운 것이 목덜미에 닿았다.

부드럽지만 메말랐고, 차갑지만 뭉툭한 이건... 방울?

"유감이야... 넌 머리가 긴 게 더 잘 어울렸는데..."

"뭐...라고요?"

나는 목젖을 움직여 침을 삼키고 간신히 입을 뗐다.

가능한 한 고개를 돌리지 않으며 상대를 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당신... 대체 누구야?"

진심을 담아 질문을 던졌지만, (목소리로 보아) 남자는 낮고 질척질척한 어조로 딴 소리를 했다.

"드디어 찾았어. 예전의 한, 이번에야말로 갚아주겠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

"누구냐고 물었잖아! 알지도 못하는 인간한테 머리가 기니 유감이니 하는 말을 들을 이유는 없어!"

목에 닿은 것이 날카로운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때, 내 몸은 재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팔꿈치로 상대를 밀치고 겨우 빠져나온 나는 방어 태세를 갖추며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보이는 상대니까 수상한 낌새를 보이면 바로 날려버리겠어!

목소리를 높여 상대의 주의를 끌려 노력하면서 나는 머릿속에서 전략을 짜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옆에 있던 엄마나 큐브가 보이지 않는 지금은 나 혼자서 어떻게든 해야 한다.

-5학년 때부터 공수도를 배워온 게 이렇게나 도움이 될 줄이야...

내 체력이 약하다며 몸 단련을 우선시했던 엄마에게 감사하며 나는 비로소 내게 시비를 건 녀석의 얼굴을 똑똑히 쳐다볼 여유를 얻었다.

"내가 누군지 모른다...?"

남자는 눈을 치켜뜨며 내가 한 말을 되풀이했다.

흐트러진 장발, 머리를 거의 뒤덮은 챙이 넓은 모자. 빛바랜 흙색 로브와 같은 색 장갑, 부츠.

파리한 얼굴에 매서운 노란 눈.

-아, 센스 꽝이네...

무심코 얼굴이 찌푸려지는 나.

패션 센스도 제로인데다, 핏기 없는 얼굴과 음침한 분위기. 밤에 저 꼴을 하고 돌아다니면 돌 맞아도 할 말 없을 것이다.

맘 같아선 당장 걸친 옷부터 바꾸라고 지적하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남의 센스를 가지고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건 일단 제쳐두고...

"사람 잘못 본 것 같은데, 난 당신 따윈 몰라. 그러니까 당장 꺼져!"

내 일갈에 남자는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나를 잊어버렸나? 내가 기억나지 않아?"

"몰라!"

"내 이름은 가토... 정말 나를 잊어버린 건가?"

"속고만 살았냐?! 너 같은 건 모른다고... 가토...?"

그의 이름을 듣고 나는 한 가지 불만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걸 들추어봤자 이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지적하고픈 욕망은 다음 기회에 해소하기로 하고....

"그렇군... 기억을 잃은 거로구나. 가엾게도... 좋다, 금방 기억나게 해 주지."

내 말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센스 제로에 기분까지 나쁜 남자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헛소리를 지껄였다.

-왠지 이상한 거한테 걸린 것 같은데... 짜증나. 이런 건 어떻게 떼버리지?

맘 같아선 당장 쫓아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뭘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듯하고, 집착이 강한, 즉 스토커 기질도 느껴졌던 것이다.

도망친다거나 임기응변으로 팔을 꺾어봤자 오해를 풀지 않으면 또 나를 찾아올 것이다.

이런 거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 마주치는 건 내 쪽에서 사양이다. 어떻게든 이해의 접점을 찾아 오해를 풀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보통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기 때문에, 시도해봤자 실패할 확률이 크지만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는 수밖에.

귀찮지만...

"저기 말야, 당신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소리나 하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그리고 그 방울은 대체 뭐야?"

나는 그를 노려보며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입에 담았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손에 쥐었던 방울을 내밀어 가볍게 흔들었다.

단지 그 뿐이었는데, 그 순간 방울 소리와 함께 깨질 듯 한 두통이 머리를 엄습했다!

"으... 큭...!"

벽을 짚고 뒷걸음질 치면서도 나는 간신히 쓰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뇌를 넘어 피부를 파고드는 고통까지 막을 힘은 없었는지, 내 얼굴은 빠르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 남자 목소리, 방울 소리... 들어본 기억이 있어. 아주, 아주 오래 전...

남자에게 빈틈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파고드는 기억의 끝자락을 붙들기 위해 손을 휘저었다.

언제 들은 거지? 언제 만났던 거지? 나와는 무슨 관계였지...?

생각날 듯 말 듯 한 오묘한 느낌과 함께 머리를 짓누르는 고통의 강도도 오르기 시작한다.

몸을 가누기는커녕 정신줄마저 놓을 것 같은 위태위태한 느낌.

남자가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살기를 뿌리며 손에 힘을 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내 이성의 끈은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죽는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디 엔드라는 허망한 수식어를 떠올렸을 때.

별안간 바람이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헤치고 남자의 기척이 멀어졌다.

나를 안아드는 부드러운 손. 따뜻하고 그리운 감촉. 가토라는 놈을 향한 날카로운 살기.

일그러진 얼굴로 그를 노려보는 엄마의 매서운 눈초리. 전투 자세를 잡으며 같은 표정을 짓는 큐브.

그것을 끝으로, 내 의식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